꿀밤나무아래/John
교환, 생명과 바꾸다
꿀밤나무
2012. 6. 25. 11:01
어느 간호사의 감동적인 수기입니다.
아침에 출근해 보니 아직 이른 시간인데 25살 남짓 돼보이는 젊은 아가씨와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주머니가 두 손을 꼭 마주잡고 병원문 앞에 서있었다. 아마 모녀인 듯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말했다. “아주머니..아직 진료 시작 될려면 좀 있어야 하는데요.” 내 말에 두 모녀가 기다리겠다는 표정으로 말없이 마주 보았다. 업무 시작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두 모녀는 맞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작은 소리로 얘기를 주고 받기도 했고, 엄마가 딸의 손을 쓰다듬으면서 긴장된. 그러나 따뜻한 미소를 보내며 위로하고 있었다. 잠시 후 원장 선생님이 오시고, 나는 두 모녀를 진료실로 안내했다. 진료실로 들어온 아주머니는 원장님께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얘..얘가...제 딸아이예요...예..옛날에. 그니까..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외가에 놀러갔다가 농기구에 다쳐서 왼손 손가락을 모두 잘렸어요.다행이 네 손가락은 접합수술에 성공했지만...근데....네...네번째 손가락만은 그러질 못했네요....선생님, 다음 달에 우리딸이 시집을 가게 됐어요.. 사위될 녀석...그래도 괜찮다고 하지만, 그래도 어디 그런가요.. 이 못난 에미.....보잘것없고 어린 마음에 상처 많이 줬지만..그래도 결혼반지 끼울 손가락 주고 싶은게..이 못난 에미 바램이예요.. 그래서 말인데.. ..늙고 못생긴 손이지만 제 손가락으로 접합수술이 가능한지요” 그 순간 딸도 나도 그리고 원장님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원장님은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한 채 “그럼요. 가능합니다. 예쁘게 수술 할수 있습니다”라고 하셨다. 그 말에 두 모녀와 나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지요. 딸의 어린 시절 실수와 성장과정의 아픔, 그리고 장애를 당신의 아픔으로 여기며 육신의 일부라도 잘라서 딸의 상처를 싸매주며, 딸의 인생을 축복하려고 하는 어머니의 구구절절한 사랑입니다. 탈무드에서는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을 두고,“하나님께서는 직접 가실 수 없는 곳에 어머니를 대신 보내셨다”고 하며, 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닮은 것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꼽습니다.
여기서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지옥의 영원한 형벌에서 구해내기 위해서 손가락 하나 잘라주신 정도의 희생을 하신 게 아닙니다. 육체의 살점이 다 찢어지도록 처절한 채찍질을 당하셨습니다. 인간이 고안한 사형방법 가운데 가장 치욕적이고, 가장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십자가에서 손과 발이 못박히고, 배에 창으로 찔리셔서 마지막 남은 피 한 방울, 땀 한 방울까지도 남김없이 다 주셨습니다.
이 엄청난 고통과 희생과 수치를 우리를 대신하여 당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우리의 온갖 저주를 최고의 복으로 바꿔오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인생이 바뀌고 운명이 바뀌고 영원이 바뀌는 곳입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의 말을 빌리면 이 십자가 사건을 믿는 자에게는 “즐거운 교환, 행복한 교환”이 일어난 것입니다. 인생의 죄와 저주가 하늘의 복과 생명으로 교환된 곳이 십자가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기독교 최고의 역설로서, 우리에게 ‘즐거운 교환’ 장소입니다. 무엇이 어떻게 교환됩니까?
· 우리는 그분 앞에 죄를 갖고 나아가 용서를 안고 돌아옵니다.
· 가난을 갖고 나아가 부요를 교환해 돌아옵니다.
· 가난을 갖고 나아가 부요를 교환해 돌아옵니다.
· 상처를 갖고 나아가면 치유를 교환하여 돌아옵니다.
· 죄책감을 갖고 나아가 자유함을 교환하여 돌아옵니다.
· 죄책감을 갖고 나아가 자유함을 교환하여 돌아옵니다.
· 염려를 갖고 나아가 평강을 교환하여 돌아옵니다.
· 열등감을 갖고 나아가서 자존감을 교환하여 돌아옵니다.
· 열등감을 갖고 나아가서 자존감을 교환하여 돌아옵니다.
· 영벌을 가지고 나아갔다가 영생을 교환하여 돌아옵니다.
이 얼마나 즐거운 교환입니까? 이 얼마나 행복한 교환입니까? 교회는 이 아름다운 교환의 현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