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
포항에 넷째 동생과 함께 살고 계시는 친정어머님...
아이들 키우느라 ... 일 하느라... 일상의 잡다한 이런 저런 일에 휘둘리며 사느라....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는 딸인데...
딸한테 전화를 하시면서도 혹시나 바쁜 시간은 아닌지... 주저하시는 목소리로 내 기색을 살피시던 어머니..
그제...
모처럼 어버이 날이어서 여름에 덮을 시원한 모시이불 하나 사 들고 찾아뵈었다.
하얗게 세신 머리... 피부에 거뭇거뭇 피어난 검버섯... 무릎관절염 때문에 조금만 걸어도 뻗정다리가 되신다는 꾸부정하게 바깥쪽으로 휘어진 다리...
그래도... 목소리만은 여전히 카랑카랑하셨다.
그런데... 까칠한 성격 탓에... 난 늘 엄마에게 조심스러운 자식이다. 마음으로 엄마의 행동과 말을 살피기보다는 머리로 판단해서 위로의 말보다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말을 잘 해서 엄마 마음을 늘 서운하게 하는 딸이기 때문이다. 난 엄마에게 정말 우호적이지 않은 딸이다.
지금은 앞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오십의 나이에 거울 속의 내 모습은 영락 없는 우리 엄마의 모습 그대로이다.
지금의 엄마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내가 저렇게 늙어가겠구나... 그런데 안심이다. 엄마처럼만 늙을 수 있다면...
내 어머니는 유난히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고 ... 기가 친구들 엄마보다 세 배는 세고 ... 유난히 바른 것을 좋아하시던 성품이어서 나는 다른 얘들보다 자그마한 일에도 꾸중을 심하게 듣고 자랐다. 다정다감한 친구들 어머님들이 왜 그렇게 부러웠었는지...
어른들이 나를 놀리려고
"경희야 너 엄마 무섭지? 사실 니 친엄마는 황춘옥 다리 밑에서 호떡 장사한다 아이가. 니 엄마 아니라서 절케 무서븐기라"
난 엄마에게 꾸중을 들을 때마다 마음 속으로...
"친엄마가 돈 많이 벌면 꼭 나를 데리러 오실거야. 그래서 저 무서운 엄마한테서 나를 구출해 내실거야."
그런 말로 꾸중들어 아픈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며 살았다.
중학교 2학년 때인가... 급성 늑막염으로 병원엘 갔다가 학교에 들렀다. 당분간 학교를 못 나오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그런데 담임 선생님께서 우리 엄마를 보시자마자
"아~~ 윤경희 어머님 되시는군요. 경희가 엄마를 빼다 박았네요."
아아~~~ 절망이었다.
도무지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인간미라곤 눈 씻고 찾아볼래야 찾을 수 없었던 그 무서븐 엄마가 실제 내 엄마가 맞다니...
딸을 키우면서... 딸이 잘못했을 때...난 엄마 생각을 했다.
내가 너무 열 받았을 때 딸이 얼른 내 앞을 피해줬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너무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아이를 나무라게 되면 아이 마음에 심한 상처를 안겨주게 될까봐서...
그럴 즈음에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요즘 뭐하노? 마이 바쁘나? 한 번 안 올래? 보고싶구만..."
난 너무 의아했다. 나를 보고 싶어 하시다니..
"엄마 제가 보고싶어요? 맨날 전화하는데... "
"전화하고 같나... 얼굴을 봐야제. 야가 머라카노.. 부모가 자식이 보고싶지 그럼 안 보고싶나?"
"엄마 궁금한게 있는데...엄마는 왜 어릴 때 저를 그렇게 심하게 나무랐어요? 난 내가 너무 감정이 격해있을 때 은정이가 피했음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엄마는 도망 가는 나를 끝까지 잡아다가 앉혀놓고 나무라셨잖아요"
"내가 내 성격을 알제.. 니가 그렇게 도망가믄 내가 무서바서 집에 못 들어오고 딴 데로 튈까봐서 안 그랬나.. 그래서 끝까지 잡아다가 앉혀놓고 니가 뭘 잘못했는지 설득을 했던기다. 지금 생각하믄 후회 마이 된다. 그렇게 야단 많이 치믄서 키우는기 아인데.."
나름...
나를 사랑하시는 방법이었구나...
난 그렇게 철없는 딸이었다.
지금의 그 어머닌.....속이 바다 보다 깊고 하늘보다 넓다. 너무나 모진 삶을 살아내시느라 속이 다 녹아내려서 그렇게 넓어지신 거라 생각한다.
모처럼...
엄마와 이틀 간이나 아무 것도 안 하고 그냥 때 되면 밥 해 먹고 누워서 뒹굴뒹굴 옛이야기를 나누었다.
난 ...
이 세상에 엄마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하다.
오십 줄에 들어선 딸이지만 엄마에게 난 여전히 딸이다. 뭔가 아직까진 설익어서 위태로운...
나를 그리 봐주는 엄마가 있다는게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