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담 주인석

"내겐 너무 낯선 요즘 유행가"

꿀밤나무 2012. 5. 7. 02:25

 

[주인석 TV에세이

일요일 늦은 오후, 여름방학 특집이라면서 '생방송 SBS 인기가요' 가 두시간 가까이 방송됐다. 나는 생애 첫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교 1학년짜리 아들, 그리고 예비 유치원생인 둘째 아들과 놀아주느라 그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그 특집은 분명 나 같은 '아버지'가 아니라, 여덟살, 여섯살짜리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유승준과 신화와 H.O.T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심지어 '에쵸티'라는 청량음료를 찾아 마시기도 하는 그 아이들 말이다.

나는 문득 어렸을 때 내가 무슨 노래를, 어떤 가수를 좋아 했나 돌이켜 보았다. 내가 내 아이들만큼 어렸을 때 나는 어머니께서 이미자 노래를 따라 부르시는 걸 들었고, 아버지께서 사오신 패티김과 배호 노래를 들었다. 나이 많은 누이들이 열광하던 '쇼 쇼 쇼'에서 펄 시스터즈와 김추자, 그리고 조금 뒤엔 이장희와 김세환과 윤형주 등등을 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그들은 결코 '나의 가수들'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신중현과 송창식을 좋아했지만, 그들도 소위 '386세대'라는 내 세대 가수들은 아니다.

나는 '생방송 SBS 인기가요'를 보면서, 심하게 말하면 미국 LA쯤으로 이민 혹은 여행을 와서 미주지역 한인방송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을 일으켰다. 왜색이니 전통가요니 트로트니 뽕짝이니 한국적 포크니 록이니 하던 편 가르기는 먼 옛날 얘기였다. 일본대중음악 표절 시비도 심심치 않지만, 요즘 한국 대중음악의 현주소는 LA 어느 뒷골목쯤임에 틀림없다. 영어와 '한국말 아닌 한국말'이 희한하게 뒤섞여 있는 곳. 지난 시대에는 그 곳이 이태원이나 동두천같은 기지촌과 미8군 무대였는데.

다시, 엄정화도 핑클도 컨츄리 꼬꼬도 김현정도 아닌 내 젊은 날의 가수는 누구였을까 생각해본다. 그 비어있는 괄호 속에 들어올 이름이 조용필이라는 게 기막히다. 그러나 정작 그 젊었던 시절에는 한번도 조용필이 나와 상관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암울했던 80년대에 나는 온갖 불온한 저항가요 속에서 살았고, 조용필은 '저 쪽' 가수였을 뿐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내 세대, 아니 나의 불행이다. 하지만 내 세대는, 아니 적어도 나는 젊은 시절 텔레비젼 바깥에 소위 '저항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 요즘 젊은 세대 문화는 대개 텔레비젼이 그려놓는 틀 안에서만 노는 것 같다고 느끼는 건 나의 지나친 편견일까. 그들이 작아졌나 텔레비젼이 커졌나. 아니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의 숨은 문화가 있는 걸까.      (극작가-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