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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 '민세를 말하다'

꿀밤나무 2012. 5. 3. 17:33

()민세기념사업회는 2010년부터 평택시의 후원으로 민세 안재홍 선생 탄생일인 매년 1130일 민세상을 시상하고 있다. 민세상은 우리고장 평택출신의 독립 운동가이자 정치가, 언론인, 사학자였던 민세 안재홍 선생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제정했다. 신간회운동과 해방 후 남북화해의 민족통일운동에 힘쓴 민세의 좌우합작정신과 1930년대 일본의 식민사관에 맞서 고대사와 실학연구에 힘쓰며 조선학운동 실천 정신을 기려 사회통합부문학술연구2개 부분에 뚜렷한 공적이 있는 분들에게 시상하고 있다.

2011년 제2회 민세상 사회통합부문 수상자는 시인이자 사상가인 김지하 시인이다. 김지하 시인은 1960-70년대 저항시를 발표하고 7년 넘게 투옥당하면서 반독재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80년대 이후 생명운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21세기 한민족의 진로에 대해 사회 통합적 관점에서 다양한 화두를 제시, 시대의 선구자로 실천적 노력을 해온 분이다.

라일락꽃 가득한 따뜻한 봄날, 장모이신 고()박경리 선생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김지하 시인을 만나 민세상 수상의 소회와 한국사회, 평택시민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들었다. 

늦었지만 제2회 민세상 사회통합부문 수상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 평택시와 시민들의 민세정신 선양노력에 크게 감동

작년에 수상소감에서도 밝혔듯이 민세상은 제게 아주 각별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중용의 정신을 크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민세 선생은 일제하 신간회 창립과 해방 후 남북화해의 민족통일운동에 이르기까지 일평생 중용통합의 가치를 부르짖은 분입니다. 단순히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실천을 통해 수차례 투옥에도 굴하지 않고 민족의 나갈 길을 제시한 분입니다. 4.19 시절부터 제게 큰 가르침을 줬던 분이 민세 선생입니다. 돌이켜보면 제 삶도 민세를 닮아 독재 시대에는 치열하게 저항했고, 그러면서도 이 나라 대한민국과 동아시아의 미래에 대해 중용의 관점에서 다양한 화두를 제기 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나의 이 길이 인정을 받아서 기쁘기도 합니다.

평택시가 민세상과 다양한 선양사업을 적극 후원하고, 지역각계 인사와 유족들이 자발적으로 민세정신 선양에 노력하는 점도 인상이 깊습니다 

김지하 시인께서 생각하는 민세 안재홍 선생은 어떤 분인가요 ?

- 민세는 민족과 세계의 조화를 추구했던 참지식인

민세 선생은 20세기의 지식인 가운데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면서 민족과 세계의 조화를 추구했던 참 지식인입니다. 6.25때 납북돼서 남한사회에서는 잊힌 분으로 최근 다시 조명을 받고 있지만 평택에서 그 정신을 계승해 나가길 바랍니다. 특히 민세가 창립에 핵심역할을 했던 신간회는 평택서 꼭 관심을 가지고 21세기의 신간회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21세기는 복합의 세기입니다. 우리민족의 당면과제도 국제적 민족주의입니다. 민족과 세계의 살길도 화엄의 기본인 월인천강(月印千江) , 하나의 달이 천개의 강물에 다 다르게 비치는 것입니다. 결국 전 인류와 지구는 하나의 융합적 통일문명사를 목표로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에 덧붙여 유물과 유심의 통합도 여전히 중요합니다. 사상과 학문뿐 아니라 새로운 경제에서도 돈과 마음의 융합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 조화와 중용의 민세정신 현대적 계승 필요

그런 의미에서 양극단으로 치닫는 오늘 민세가 추구했던 중용의 정신은 저뿐 아니라 이 시대에 매우 중요합니다. 민세는 입고출신(立古出新)에 노력했던 대표적인 지식인입니다. 그가 추구한 중용 혹은 중도는 별다른 고민 없이 가운데에 서자는 적당한 중간이 아닙니다. 중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중입니다. 즉 상황에 따라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지향점을 조절해나가는 능력이지요. 민세는 1920년대 신간회운동, 1930년대 조선학운동 1945년 통일정부수립운동에 걸쳐 이 시중의 의미를 비판적으로 해석하여 자기시대의 문제를 풀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흔히 중도를 기회주의로 단순 비판하지만 이는 중도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 기인합니다. 아울러 민세가 고조선과 단군연구에 힘썼듯이 선조의 전통을 알고 해석하여 새롭게 창조해보려는 고심참담한 민세 선생의 일평생도 제게는 크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국사회가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습니다. 한국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선생님의 고언을 듣고 싶습니다.

- 문명사적 대변혁이 오고 있음 인식해야

우리는 민세의 정신을 21세기 사회변화에 맞게 재해석해야합니다.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고 우리의 국운이 크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우리민족은 예언자적 민족, 루돌프 슈타이너의 성배(聖杯)의 민족으로 세계사적 사명을 완수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최근 K-POP 열풍은 그 반증입니다.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뉴욕 월가의 데모대의 시위구호에 주목해야합니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위스, 네덜란드 등 유럽의 경제위기는 결국 유럽 중심 경제의 종언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커다란 문명사적 격동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일진사태의 해결에서 보듯 폭력에 의한 해결은 곤란합니다. 아이들에게 폭력대신 감수성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여성과 아이들의 가치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2002년 붉은 악마에 이어 2007년 촛불 시위의 상징성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시위의 주체, 구호, 회의방식, 명령계통이 없는 자발성에 이르기까지 과거와 다른 시위문화는 위정자들도 민심의 흐름으로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합니다. 권위주의적 정치문화에서는 불가능한 현상들이지요.

- 동아시아의 전통과 문화정신 재해석이 필요

저는 최근 오일장에 자주 갑니다. 신시(新市)의 재발견이랄까? 자본주의 이후의 호혜 협력적 인간관계, 경제관계의 가능성이 오일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산자는 소비자를 소비자는 생산자를 배려하는 상호이익 중시의 사회가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거대한 전환을 쓴 폴란드의 경제학자 칼 폴라니도 이미 60년 전에 자유자본주의 이후의 세계모습으로 호혜적 시장경제를 강조했습니다. 이제 유럽 자본주의의 몰락과 함께 세계경제는 중심지는 동아시아로 넘어오고 있습니다. 이제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사회의 대안으로 제시해볼만한 것이 신시(新市)의 재발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거 우리 것의 소중함을 스스로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에 뿌리를 둔 중국사상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소위 만주와 동아시아에 걸친 동북사상들 예를 들어 노자, 장자, 복희, 황제내경 등등 동이족 속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7천개 넘는 자기 신화를 가지고 있고 특히 천부경, 산해경은 여성 중심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이는 발해의 예맥 전통과도 잇닿아 있지요.

- K-pop 열풍은 우리 민족문화예술의 핵심인 시김새에 대한 이해와 창조적 해석에 바탕을 두어야

K-POP 열풍은 음악에서 끝나지 않고 문학, 경제, 정치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될 것입니다. 개벽세상이 오는 것이지요. 이런 변화에 대비해야합니다.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서 우리는 민족문화예술의 핵심으로 시김새에 주목해야합니다. 시김새는 슬픔과 희망의 동시적 표현입니다. 흰그늘이지요, 움직이면서 정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혼돈속의 밝은 기운입니다. 춘향가중의 쑥대머리는 시김새의 상징입니다. 한류와 K-POP의 근본도 시김새입니다. 최근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임재범의 후배인 박완규라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서 시김새의 가능성을 보았지요. 노래에 그늘이 있는데 그냥 그늘이 아니라 흰그늘입니다. 슬픔을 넘어서는 희망이 보입니다. 평택출신이라고 알고 있어요. 대단히 훌륭한 가수예요.

- 여성과 아기의 중요성 인식하고 생명에 대한 깨달음 필요

여성과 아기들의 생명, 생활중심 가치는 후천개벽의 핵심입니다. 여성들과 아기들을 주체로 하되 다수 중생들의 생명과 평화의 보장이 필요합니다. 기독교의 산상수훈도 결국 여성과 아동중심의 세상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것이지요. 저는 환경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연은 환경이 아니지요. 녹색성장은 여러 가지로 모순이 있는 개념입니다. 자연과 생명자원, , 농산물, 동식물과 물, 공기는 거룩한 우주 공동체의 하나입니다. 자연 스스로의 정화능력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생태, 생명운동이 전환돼야 합니다. 

민세 안재홍 선생을 배출한 평택시민들에게 민세 사상 계승의 측면에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

- 평택이 열린 민족주의와 신간회 정신 계승의 출발지로 거듭나기를

민세가 70년 전 신간회 운동 속에서 부르짖은 좌우통합과 국제적 민족주의, 민족적 국제주의는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민족 지성의 탁견입니다. 사회통합도 21세기의 화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강조한대로 평택은 민세가 추구한 신간회 정신의 선두도시가 되기를 바랍니다. 신간회를 연구하고 정신을 고양하는 운동이 평택에서 벌어지기를 바랍니다. 평택으로 미군기지가 이전되어 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 민세가 부르짖은 민족적 국제주의, 국제적 민족주의 정신이 시민사회 속에 파고들어야 하는 곳이 평택입니다. 힘과 폭력만이 판을 치던 80년 전 민세주의를 통해 전통과 현대의 조화, 좌와 우의 균형과 열린 민족주의를 주창한 민세 안재홍 선생을 배출한 평택시민들은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후세들에게도 민세의 극단을 뛰어넘는 조화와 중용의 정신이 널리 계승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민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