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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당아트TV 조윤범의 파워 클래식 / 2회 멘델스존

꿀밤나무 2012. 6. 1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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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x Mendelssohn (1809. 2. 3 - 1847. 11. 4)

철학자 모제스 멘델스존의 손자로, 그는 나중에 기독교로 개종했던 명망있는 유대인 집안에서 은행가의 아들로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어릴적부터 충분한 음악 교육을 받아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나타냈으나, 그의 부모님은 신중하여 그의 재능을 이용하려 들지 않았다. 아버지는 멘델스존 자신이 음악에 헌신하겠다고 진지하게 뜻을 세운 뒤에야 음악 교육을 시켰다.

멘델스존은 3세 때 베를린으로 이주, 17세 때 "한여름 밤의 꿈"의 서곡을 발표하여 작곡가로서 이름을 날렸다. 어린 시절에 독일에서 성공하면서 유럽 전역을 여행하였는데, 특히 잉글랜드에서 작곡자, 지휘자, 독주자로 크게 인정받아 이 곳을 10번이나 방문하였으며, 이곳에서 자신의 여러 수작을 초연하여 잉글랜드는 성인 멘델스존의 인생 역정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멘델스존은 원래 보수적인 음악 취향을 보여서 프란츠 리스트, 리하르트 바그너, 엑토로 베를리오즈 같은 당대의 대담한 음악가와 동떨어졌다. 그가 라이프치히에 세운 음악학교는 전통적인 고전 음악의 보루가 되었다.

멘델스존은 교향곡, 협주곡, 오라토리오, 피아노 곡, 실내악곡을 썼다. 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음악에 대한 관심을 되살리는데도 중요한 역활을 하였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음악 취향이 변화하고 반유대주의가 대두되면서 오랜 세월동안 그는 무시를 받다가 오늘날 그의 독창성이 재평가되고 있다. 멘델스존은 이제 낭만주의 음악  음악가 가운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1843년 라이프치히 음악원을 창립하고, 이어 프로이센 국립 음악장, 라이프치히 대학 명예박사가 되었다.

1847년 봄, 몹시 따르고 좋아했던 누이가 숨지자 그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몸져 누웠다. 시름시름 앓던 그는 그해 가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내용 출처:위키피디어, 네이버지식 백과, 네이버 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