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밤나무아래/John

기러기의 우정과 섬김

꿀밤나무 2012. 6. 8. 10:03

우리나라 전통 결혼식 때도 기러기를 드리는 예가 있습니다. 나무 기러기를 든 ‘기럭아비’의 인도로 사모관대를 쓴 신랑이 신부집에 들어갑니다. 신부집에 도착하여 기럭아비가 기러기를 주면 신랑은 기러기를 작은 탁자 위에 올려놓고 장모에게 두 번 절하면 장모는 기러기를 안고 방으로 들어갑니다. 옛날에는 살아 있는 실제 기러기를 드렸다고도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비록 동물이지만 기러기의 성품이 인간에게 주는 교훈이 적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기러기는 평생 한번 정한 짝을 바꾸지 않고 지킵니다. 한 마리가 죽어도 다른 한 마리는 나머지 일생동안 새로운 짝을 찾지 않습니다. 기러기는 위계질서를 잘 지킵니다. 하늘을 날 때에도 그들은 비행 편대와 조화를 확실히 유지합니다. 기러기는 어디를 가든지 그들의 존재를 남기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이 세상을 떠날 때 그들의 자손들에게 위대한 유산을 남겨야 한다는 등등의 교훈을 주기 때문이겠지요. 이처럼 기러기는 예부터 공동체를 상징하여 가정과 집단의 끈끈한 결속을 의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기러기 아빠’라는 용어가 생겨났는지도 모릅니다.

 

‘새 박사’로서 경희대학교에서 생물학 교수로 정년퇴임하고, 지금은 환경전문가로 활동하는 윤무부 교수가 쓴 <승리의 V자를 그리며 나는 새들처럼>이란 책에 나오는 기러기 교훈은 깊은 울림을 줍니다.
무엇보다 추운 겨울을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보내려고 달 밝은 가을밤에 길 떠나는 기러기 떼는 ‘기럭기럭’ 울음소리와 함께 그들은 하늘 위로 승리의 V를 그리며 날아갑니다. 한 마리도 낙오되는 법 없이 이들은 3천 킬로미터나 되는 먼 거리를 날아갑니다. 또 다른 내일을 위해, 또 다른 삶을 향해 그들은 본성이 가르치는 대로 그렇게 먼 여행을 떠납니다. V자 대열로 날 때, 혼자 날 때보다 기러기의 심장박동과 날개 짓 수는 훨씬 줄어듭니다. 그만큼 에너지를 덜 쓸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 이유는 앞의 새가 바람의 저항을 막아주어 뒤따라오는 새들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때문입니다. 또 앞의 새가 일으키는 날갯짓으로 뒤에 상승기류가 생기기 때문에 뒤에 있는 새는 날갯짓을 덜해도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떠있게 됩니다. 그런데 이 상승기류는 새의 날개 끝에서 만들어지므로, 이를 이용하려면 뒤의 새가 앞의 새의 날개 끝에 자리해야 합니다. 이렇게 한 새의 날개 끝에 다음 새가, 그리고 그 날개의 끝에 그 다음 새가 따라가다 보면 기러기는 어느새 V자 혹은 사람 인(人)자를 그리며 날아가게 됩니다.

 

나 혼자만의 여행이 아닌, ‘함께하는 여행’인 만큼 기러기들은 서로가 서로를 등대삼아, 발판삼아 그렇게 날아갑니다. 그래서 앞의 친구가 힘들어 하면 기러기는 어느새 자신이 앞에서 이끌고 그 친구를 뒤로 보내 쉬게 한답니다. 함께 목적지에 가려고, 서로의 짐을 나누며 가는 것입니다. 기러기들이 이토록 질서정연하게 서로를 위해 주며 함께 날아갈 수 있는 것은 그들만의 대화, 즉 소통의 통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러기의 울음소리에는 ‘영차! 영차! 조그만 더’라는 격려의 메시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울음소리는 서로를 묶어 주는 환호성으로 그들의 집단력을 강화시켜 주며 서로를 단단한 끈으로 묶어 주고 이어 줍니다.
또 기러기들은 어떤 기러기가 병을 얻거나 상처를 입어 추락하면, 그 ‘친구’를 보호하고 돕기 위해 일부가 무리를 이탈해 상처입은 기러기를 따라갑니다. 그리고 아픈 기러기가 완쾌되어 다시 비행할 수 있게 되거나, 혹은 죽거나 할 때까지 그와 함께 머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자신의 무리를 따라 가거나 다른 무리에 합류합니다.
기러기들의 끈끈한 우정과 사랑, 그리고 섬김이 아마도 지금 내 곁에 있는 이를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며 섬기는 마음이야말로 ‘나’가 아닌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이고, 함께 꿈을 꿀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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