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란 없다"
충격적인 이 말은 필자의 스승께서 하신 말씀이다. 스승이 되기 위해서는 가르치는 것은 물론이고 사후관리에다 인격 보시까지 할 줄 알야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스승으로 불리기보다 강의 기술자라고 불리는 것이 더 마음 편하다고 했다.
스승의 말씀을 들은 이후 선생이라 불리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다. 스승이라는 의미를 담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과 성씨나 이름을 부를 수 없으니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 두 종류가 있다. 필자는 스승이라는 뜻이 담긴 '선생'으로 불린 적이 몇 번이나 될까. 그리고 그럴 자격이 될까.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그것은 스승으로 기억해 주는 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적잖은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들은 지금 처녀 총각이 되어 사회에 봉사하고 있을 것이다. 간혹 길이나 식당에서 만난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어김없이 필자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몇 달 전, 식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삼겹살을 주문하고 친구와 마주 앉아 먹고 있는데 도우미를 하고 있던 처녀와 총각이 번갈아가며 필자를 자세히 본다. 그러더니 처녀가 가까이 와서 나지막한 소리로 묻는다.
"어어, 혹시 주인석 선생님 아니신지요?"
"맞는데요. 누구신지..."
짧은 시간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기억에 없다. 그때 처녀가 총각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 외친다.
"봐라, 맞다카이"
처녀의 말을 들은 총각이 번개같이 달려왔다. 그러더니 둘이 나란히 절을 한다. 갑작스레 벌어진 일에 필자도 어설프게 맞절을 했다.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의 첫마디는 "선생님 고맙습니다. 늘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였다. 그들은 이름을 밝히면서 십여년 전 이야기를 한다. 공부를 마치고 나면 늦은 밤에 집까지 차로 태워주어서 고마웠다고 한다. 또, 욕쟁이였던 자신에게 욕을 잘해서 귀엽다고 말해주었기 때문에 이제는 욕하지 않고도 잘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얼굴이 유난히 하얗고 맑았던 한 아이가 떠올랐다. 그 아이는 수업시간에 입만 열면 욕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아이와 첫 수업을 하는 날,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선생님들로부터 괄호 밖의 아이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대책이 안서는 아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이의 가정환경을 살펴보니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아졌다. 칭찬을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욕을 하니깐 귀엽다고 말해줬다. 그런데 혹시나 그것을 아이가 잘못 받아들일까봐 욕을 안 하는 날은 더 구체적으로 입이 참 예쁘고 멋지다고 칭찬을 해주면서 몰래 불러 과자 같은 작은 선물도 줬더니 차츰 욕이 줄어들었다. 더불어 성적이 쑥쑥 올랐고 아이는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쪽지 편지도 자주 보냈다. 그런 아이에게 필자는 말 한마디 못 남기고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 아이에게 사후관리도 인격적인 보시도 하지 못한 선생이라 그들이 십년 전 이야기를 하며 필자를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 무척 부끄러웠다.
십변 세월을 되짚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다가오고 떠나가고를 반복했다. 그 중에 지금까지도 간간히 연락이 오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연락이 완전히 끊어진 사람도 있다. 스승은 잘 가르쳐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자의 등을 쓰다듬어 주는 뒷손질과 끊임없는 인격 보시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스승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지식과 마음 그리고 인내심까지 탈탈 떨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강의 기술자야"라는 스승의 말을 씹고 또 씹어보았다.
그는 강의 기술자가 아닌 참 스승이 분명했다.
'수필 > 이담 주인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담서숙-김주영(울산신문) (0) | 2012.06.17 |
---|---|
일곱살에 만난 엄마 (0) | 2012.06.16 |
수염 (0) | 2012.05.11 |
벼와 피 (0) | 2012.05.10 |
꽃살문 (0) | 2012.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