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건을 꼭 가져오세요."
선생님은 준비물로 손수건을 가져 오라고 하셨다. 우리 반 친구 72명은 책상 위에 손수건을 올려 놓고 선생님의 입만 쳐다보았다. 선생님은 교탁 앞 의자에 앉으셨다. 우리는 '와'하고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선생님이 의자에 앉는 날은 우리들에게 그림동화를 읽어주시는 날이다. 그림동화를 한 장씩 넘기는 상상을 하며 선생님이 빨리 읽어주시길 바랐다. 그런데 선생님 손에는 그림동화가 없었다.
"오늘은 엄마 없는 하늘 아래라는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우리는 제목만 듣고도 벌써 슬픈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주의사항을 말씀해 주셨다. 소리 내어 크게 울면 안 된다는 것과 눈물이 나면 손수건으로 살짝 살짝 닦으라느 것이었다. 선생님의 이야기는 시작도 안 되었는데 눈에는 벌써 눈물이 고이는 것 같았다.
옛날 어느 바닷가 마을에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삼형제가 살았다. 아버지는 6.25전쟁에 참여했다. 전쟁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 때문이었는지 자꾸만 엄마를 두들겨 패고 살림을 부수는 것이었다. 그런 중에도 엄마는 아기를 낳았다. 엄마는 시름시름 앓더니 얼마 못가서 죽었다. 삼형제는 엄마 없이 살아가게 되는데 큰 형이 막내를 업고 염전에서 일을 하여 번 돈으로 끼니를 겨우 이어갔다. 아버지는 결국 정신병원으로 가게 되고 막내도 고아원으로 보내질 뻔 하다가 주변 사람들이 도움으로 삼형제는 같이 살게 된다. 이것이 전체 줄거리다.
아버지한테 맞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우리도 맞은 것처럼 아팠고, 넘여져서 피를 흘리는 상상까지 했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엄마'라고 부르며 울었다는 대목에서는 우리도 마음속으로 '엄마'를 부르며 손수건을 집어 들었다. 추운 겨울 손을 호호 불면서 물을 길러다 날랐다는 이야기, 동생을 업고 염전에서 종일 일하고 손발이 퉁퉁 부어 집으로 돌아와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엄마'하고 아궁이를 보며 울었던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가 그렇게 슬프다는 것을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생생하게 배웠다. 그 후 나는 행여나 엄마가 일찍 죽을까봐 노심초사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엄마 말이라면 무엇이든 순종했다. 엄마는 아이들이 말을 안 들으면 빨리 죽을 지도 모르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너무나 철이 빨리 들어버렸다. 말도 잘 듣고 숙제도 잘하는 나를 보고 엄마는 착하다고 칭찬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가 제일 슬픈 거래."
"그걸 벌써 알았단 말이야? 그럼 집에서는 내가 엄마지만 학교가면 누가 엄마지?"
학교나 집이다 다 같이 '엄마가 엄마잖아'라는 내 말에, 엄마는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엄마라고 조곤조곤 설명을 곁들여 가르쳐주었다. 엄마 말을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가끔 선생님이 몸이 아파서 학교에 못 나오는 날은 교감선생님이 대신 공부를 가르쳐 주셨는데 이상하게 우리는 기가 죽었고 쓸쓸해졌다. 엄마란 존재가 주는 힘이었다. 엄마가 없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라는 것을 너무 어린 나이에 알게 되었다.
그후 나는 3월이면 생물학적인 엄마 외에 선생님이라는 또 다른 엄마를 매년 만났다. 초등학교 1학년에 만난 엄마, 동화를 읽어주었던 엄마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마르지 않는 감성의 샘물을 퍼 올려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도 간간히 '일곱 살에 만난 엄마'를 떠올리며 하늘 아래 어디엔가 엄마가 계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추억의 손수건을 꺼내 만지작거린다.
수십 년 전의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고 '현지수 선생님'이라는 이름까지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이 나만의 일은 아니다. 초등학교 동창회 때마다 친구들이 일곱 살에 만난 엄마 이야기를 빼지 않고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추억은 한 줄의 메모, 하나의 동화, 하나의 물건, 한 사람의 얼굴이다.
우리 아이들을 보며 이들에게도 추억할 만한 것이 있을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내 추억을 들추어낼 때마다 감성이 사라진 현 세태에서 느끼는 연민 같은 것이다. 저들이 내 나이가 되었을 때, 도대체 무엇을 추억이라 말할까. 누구를 단짝이라 말하며 누구를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라 할까.
평생 동안 펼쳐볼 수 있는 아름다운 그림동화 같은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 3월에 만나는 사람에게는 인연의 준비물 하나씩을 숙제로 내줘도 좋겠다. '손수건'이란 말만 들어도 나는 유년의 그림동화가 저절로 떠오르고 그때 선생님의 모습이 긴 세월에도 늙지 않고 내 앞에 또렷이 나타난다. 하얗고 조그마한 손수건 한 장에 내 일곱 살이 올록볼록 빼곡하게 들어않아 있다. 새 학기가 되면 떠오느는 손수건, 그리고 일곱 살에 만난 그 엄마가 영원히 내 마음에 살아 있다.
3월은 누군가의 가슴에 새싹을 돋게 해 주는 달, 영혼의 선물을 주는 달이라고 말해도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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