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담 주인석

뜻밖

꿀밤나무 2012. 5. 1. 10:42

 

내게는 오랫동안 버릇이 든 즐거움이 있다. 계절이 바뀌거나 외출할 때 겉옷을 바꿔 입으며 느끼는 행복 중에 하나가 그것이다. 옷매무새를 잡으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을 때 뭔가 잡히는 것이 있으면 기쁘고 그렇지 않으면 허전하다.

손에 잡히는 것을 주머니에서 끄집어 내기 전 그것을 상상해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가끔 지폐가 아니고 영수증이거나 영화표일 때도 있다. 그럴 땐 약간의 실망을 한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주머니에 종이돈을 일부러 넣어 두기도 한다. 한참 잊어버리고 있다가 외투를 바꿔 입는 날의 즐거움을 위해서다.

옷을 갈아입을 때 주머니가 주는 기쁨처럼 우리 삶에도 생각지 않은 감사함이 찾아 올 때가 있다. 그것이 우연인 것 같지만 찬찬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주머니에 고의로 돈을 넣어두듯 어떤 계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아주 우연이라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시아버지의 며느리가 된 것도 억겁의 세월 속에 그리 될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새로 나온 의료보험증엔 아버님 이름자만 빠졌다. 여섯이었다가 다섯 식구가 된 보험증이 일곱 살 적 앞니 빼고 났을 때의 흔적만큼이나 서운하다. 아버님은 그렇게 우리에게서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었다. 그럴 즈음 우편물이 왔다. 보험료 환급금을 찾아가라는 내용이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삼 개월이 지났지만 나는 아버님이 살아계신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우편물의 이름자를 보니 아버님이 오신 것처럼 반가웠다. 아버님 얼굴이 우편물 위로 겹쳐 보였다. 아버님이 끝까지 나를 챙겨주시는구나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왔다. 평소처럼 아버님은 하늘에서도 내게 용돈을 보내셨다.

36,240.

끝자리 숫자를 다 읽기도 전에 글자가 퍼져 보였다. 내가 처음 아버님께 용돈을 받았을 때처럼.

 

어머니가 전형적인 시어머니라면 아버님은 친정아버지 같았다. 철없는 나이에 시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헤매는 송아지에게 부빌 수 있는 유일한 언덕이었던 아버님이다.

야물지 못한 내가 하는 일마다 엉성해서 어머니 눈에 차지 않아 꾸중을 들을 때 아버님은 나를 싹싹하고 귀엽다는 말로 위로하셨다. 효자와 사는 여자가 안아야하는 고통은 말로만 전달하기에는 묘하다.

효자는 중간 역할을 잘 해야 본전이고 아니면 말썽이 생긴다.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 시어머니나 며느리 중 한 사람이 큰 아픔을 겪어야 한다.

우리의 관습상 보통 며느리가 약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남편도 삼등 효자는 된다. 그러다보니 내게 살갑게 하기 보다는 어머니 편에 섰던 경우가 많다.

우리끼리 한 약속도 어머니 앞에 가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어머니 말씀이 법이 되었다. 시댁에서 나는 늘 외로운 섬이었다. 부엌바닥이 내 자리였다.

먹을 것이나 해다 나르고 잡다한 심부름이나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어쩌다 잘못된 일이 발견되어 호되게 야단을 맞아도 남은 단 한 번도 내 편이 되어 준 적이 없었다.

어떨 땐 남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모유로 두 아이를 키웠던 내가 방에 들어갔다 나오면 방에 들락거리느라 언제 일하냐고 타박이시고 우는 아이 달래느라 아이를 업고 일하면 동작 느려 일 적게 한다고 나무라셨던 어머니였다.

그럴 때도 남편은 묵묵부답으로 남의 일 보듯 했다. 어떨 땐 일부러 어머니 편을 더 드는가 싶기도 했다. 눈물 글썽글썽한 눈으로 궁지에 몰려 있으면 아버님은 나를 뒤란으로 부르셨다. 잠시 동안이라도 위기를 모면하게 해 주시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우는 아이 사탕으로 달래듯 아버님은 내 손에 꼬깃꼬깃 접은 돈을 쥐어 주셨다. “이눔아야, 월급쟁이 힘들제? 이거 가져가거라.” 용돈보다 더 따뜻한 아버님의 말씀에 쌓였던 서러움이 가슴을 타고 내렸다. 아버님과 나의 지중한 인연은 무뚝뚝한 남편과 까다로운 어머니 사이에서 만들어졌을지 모른다. 어머니의 야단이 심할수록 아버님은 내게 더 다정하셨고 남편이 무신경할수록 애살스럽게 해 주셨다.

 

아버님이 조금씩 챙겨주시던 용돈은 금액에 상관없이 내겐 항상 뜻밖의 선물이었다. 나를 가엾이 여기는 아버님을 완전히 내편으로 만들기 위해 아버님 앞에서 나는 눈물도 자주 보이고 조금 아파도 많이 아픈 척 했다. 그래서 아버님 마음엔 내가 여리고 딱한 며느리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아버님은 일 년 가까이 병원에 계셨다. 아버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뭇가지 같은 손 하나는 링거 호스로 마지막 이승과 묶여 있었다. 나머지 손으로 내 손을 잡으셨다. 너무 세게 잡아 뼈마디가 느껴질 정도였다. 나를 꼭 보고 떠나고 싶었는데 보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하시며 잘 살라고 당부를 거듭하셨다.

다 퍼주시고도 모자라 하시던 아버님의 일생처럼 마지막 당신의 몸을 맡긴 일인용 침대의 절반도 차지하지 못하고 아버님은 떠나셨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의료보험증이 새로 나왔다.

어머님와 우리 네 식구만 남은 보험증에서 마지막 아버님을 기억하며 허전함을 가슴으로 삼켰다. 그리고 아버님을 잊고 살았다. 마치 주머니에 넣어둔 돈을 잊어버리듯이. 생각지도 못한 우편물 때문에 아버님을 향한 그리움이 사정없이 일었다. 마음속으로 아버님을 불러보았다.

 

시댁이라는 새로운 가정에서 쓰러지지 않게 해 주신 아버님의 마음은 내 인생에 너무나 큰 기둥이었다. 아버님은 하늘에 가셔서까지 마지막 주머니를 털었나보다. 잔돈까지 긁어서 내게 보내신걸 보면.

이눔아야, 이것 밖에 없어 미안테이.” 분명 이렇게 말씀 하셨을 것이다.

 

우편물을 잡고 눈을 감는다. 하늘에 계신 아버님의 얼굴을 그려본다. 지금쯤 야윈 얼굴이 회복 되셨을까. 희미한 윤곽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아버님의 온화한 얼굴이다. 욕심을 좀 더 낸다면 오늘처럼 예상치 않은 일로 아버님을 한 번씩 떠 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기둥이 되고 뜻밖의 선물이 되는 사람은 잴 수 없는 가슴이 비좁을 정도로 사랑이 넘친다.

가슴보다 머리의 숫자에 더 민감한 나는 언제쯤 누군가의 뜻밖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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