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전화벨소리가 울린다. 내가 아침잠이 많다는 것을 가까운 사람들은 다 안다. 어지간히 깨워도 안 일어나거나 일어나면 짜증을 먼저 낸다. 그러니 이른 아침 내 잠을 깨운다는 것은 제법 간이 커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경아, 자나? 이번에는 너도 와야겠다.”
내 잠을 깨운 것을 먼저 미안해하는 언니의 조심스런 말투다. 언니가 가족들에게 연락을 할 때 내게는 가장 나중에 전화를 하는 편이다. 아마 이번에도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언니는 내게 벌써 서너 번 ‘양치기 소녀’로 찍힌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이상한 기류가 흐른다.
빨리 오너라가 아니고 집안일 다 해놓고 오라는 것이다. 예전에처럼 방방 뛰면서 말하던 언니 모습이 아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말도 했다. 아버지가 일주일째 눈만 감고 대다수의 시간을 잔다는 것이다. 탈수 현상이 생겨 새벽에 응급실로 옮겼단다. 아무도 못 알아본다고 한다. 심각한 상황인 모양이다. 사람이라도 알아 볼 수 있을 때 한번 부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그때 불렀으면 선뜻 가지도 않았을 내가 아닌가.
아무도 못 알아본다 해도 나만은 알아볼 것이라는 개망나니 믿음이 있었다. 이미 여러 번 겪었던 터라 이번에도 그럴지 모른다고 위안은 하지만 이상하게도 손과 마음이 정신없이 바빠졌다. 집을 어떻게 치웠는지 모르겠다. 주섬주섬 옷을 챙기며 나도 모르게 며칠간 집을 비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화장을 하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거울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데 손은 이미 노란 내 얼굴을 뽀얗게 만들고 있었다. 어쩐지 화장을 예쁘게 하고 가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병실 문을 열자 눈이 빨갛게 충혈 된 엄마는 나를 보고 또 울기 시작했다. 엄마가 우는 일은 입원 때마다 있는 일이라서 별로 애처로운 일도 아니다. 그런데 내 눈을 의심할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 앞의 아버지는 아기가 되어 있었다.
오빠의 빠른 손이 아버지 기저귀를 갈고 있었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은 처음 봤다. 대소변을 못 가리는구나. 이 생각이 들자 가슴 저 밑바닥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왔다. 기저귀를 갈고 난 뒤 아버지는 바로 잠든 아기처럼 누워서 꼼짝도 안했다.
놀라서 멈추어 서 있는 내 앞에서 엄마가 아버지를 흔들었다. 아버지는 아주 가는 실눈을 한쪽만 열었다. 다시 눈을 감아 버릴까봐 나는 얼른 달려들었다. 날 알아보겠느냐고 물었더니 ‘예’라고 한다. 언제 나한테 아버지가 저리 공손히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안다니 그래도 다행이다. 그럼 누구냐고 물었다.
“영아, 여어엉아.”
아버지는 나를 영아라고 한다. 오빠를 보고도 영아라고 한다. 엄마도 영아다. 간호사도 의사도 모두 영아다. 아버지가 아는 사람은 영아 밖에 없다.
영아는 언니 이름이다. 한밤중에나 첫새벽에 불러도 싫다 소리 안하고 달려가는 사람이 언니다. 하루에 열 번을 불러도 ‘예’하고 가는 사람이 언니다. 아버지 말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주워 담는 사람이 언니다.
귀신 듣는데 떡 말 못한다고, 언니는 엄마 아버지가 먹고 싶다는 것은 어찌해서라도 구해드리고 만들어 드린다. 어디 가서 맛있는 걸 혼자 먹고 나면 목에 낀단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도 넘어가는 음식들이 언니 목은 특별난지 걸린다고 한다.
나는 아버지 휴대폰 번호를 모른다. 한 번도 전화한 적이 없다. 그것도 언니가 사 드린 것이다. 집에만 있는 노인들이 무에 휴대폰이 필요하다고 사드렸을까 이해가 안 가지만 언니 생각은 달랐다. 신형이 나올 때마다 바꿔 드렸다. 아버지가 갖고 싶은 것은 다 해 드리고 싶다는 것이 언니 생각이다.
언니는 아버지를 대할 때 아기보듯 한다. 언니는 아버지가 귀엽다는 말도 스스럼없이 한다. 잘 삐친다는 말도 덧붙인다. 평소에 감기로 주사 맞을 일이 생기면 꼭 언니가 동행한다. 주사를 안 맞겠다고 떼를 쓰는 아버지를 달래는 데는 언니가 최고다. 주사를 맞아야 얼른 낫지요 하고 달래면 아버지는 순한 아기가 된다.
막내인 나를 못 알아보는 아버지가 무척 서운했다. 평소에 나를 제일 사랑한다는 말이 거짓말인 것이 탄로가 났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따지기에는 아버지가 너무 약자다. 언제나 당당했던 내가 언니 앞에 갑자기 너무나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언니처럼 못한 것이 부끄럽고 후회스러웠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 말에 모두 말을 잃었다. 한 번은 겪어야할 일이라고 위로를 수도 없이 했지만 덜컥 겁이 났다. 집으로 모실 것인지 다른 큰 병원으로 옮길 것인지를 이야기하며 아버지의 마지막을 우리는 담담하게 의논했다.
병원의 상술일까. 마지막 수술을 권하는 의사의 말에 우리는 모두 반대 의견을 냈고 언니만 찬성했다. 언니는 또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그냥 보내시면 평생 마음에 걸려서 편히 못 산다고 했다. 나중에 언니 속은 해부를 한 번 해 볼일이다. 걸리는 게 어찌 많은지. 내가 보기엔 언니가 걸려서 아버지가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겠다.
아버지가 누워 계신 침대를 뒤로하고 우리는 표면상 아버지 죽음을 인정했다. 그 와중에 엄마는 장 담글 준비를 다 해놨는데 어쩌나 했고 오빠는 회사일이 밀려 큰일이라고 했다. 내친김에 나는 수업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러 가야한다고 아버지 귀에 대고 말했다.
“내가 공부하고 올 때까지 죽지 말고 기다리소.”
이상하게도 그런 말이 쉽게 나왔다. 뒤에 누운 아버지는 우리가 하는 말들을 다 들은 것일까. 억울해서 죽을 마음이 싹 가신 것일까. 그날 오후, 언니가 끓여온 미음을 먹고 기운을 차리신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삼일 후에 퇴원하셨다. 의사도 우리도 모두 고개를 갸웃갸웃 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아버지가 다시 생생해지신 것은 분명 이유가 있으실 것이다. 어쩌면 자신들의 이름을 찾으라는 마지막 경고 같은 것일지 모른다.
“야들아, 너거도 이름이 있었더냐?”
부모에게 자식 이름이란 살아생전에는 얼굴을 보고 불러주고, 죽기 직전에는 마음을 보고 불러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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