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담 주인석

흔들 남편

꿀밤나무 2012. 9. 5. 23:48

강원도는 한마디로 두루뭉술하다
. 사람이든 사물이든 첫 만남 후에 표현하고 싶은 한마디는 있기 마련이다. 왜 두루뭉술하다라고 느끼는지에 대해서 조곤조곤 말하라면 리포트를 쓰는 것만큼 피곤하겠다. 그러나 어느 누가 묻는다 해도 딱 잘라 두루뭉술하다. 이 말보다 더 잘 어울리는 말을 찾기에 힘쓴다면 그는 좀 까다로운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원도에 가보지 않았던 예전에는 강원도하면 감자밖에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웃 아낙이 강원도가 고향인데 늘 하는 이야기는 감자 이야기만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름휴가를 맞아 우리가족은 강원도를 해부라도 하러 가는 심정으로 동해안 배때기에 둥근 칼날을 올렸다. 남편은 창자라도 파고 들어갈 듯 연신 발끝에 힘을 주어 밟아댔다.

여행은 잠자는 영혼을 깨운다.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몇 년간 숙면 상태에 있었던 우리들의 영혼이 소풍을 맞았다. 동해안을 따라 최종 목적지는 설악산이다. 내륙지방의 관광도 좋았지만, 굳이 강원도를 선택한 것은 공짜 콘도 숙박권 그리고 오랫동안 잠자던 영혼을 깨우기엔 찬 바닷바람만한 것도 없을 것 같고, 남편에게서 들은 흔들바위에 대한 환상 때문이기도 했다. 커다란 바위가 나같이 비쩍 마른 사람의 손에도 흔들린다는 것이 생각 할수록 신기했다. 바위를 만나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흔들어 볼 심상이었다. 생각만 해도 왠지 팔뚝에 힘이 불끈불끈 오르는 듯 신이 났다.

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군것질이다. 동해안으로 들어서니 곳곳에 처년지 총각인지 알 수 없는 오징어가 뽀얀 살을 드러내고 유혹한다. 이왕이면 아줌마 가슴 설레게 총각이 걸려라 싶은 마음으로 오징어 한 축을 샀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성별을 알 수 없는 오징어들은 내 입와 손과 눈을 즐겁게 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동해바다의 시작은 모래였는데 어느 듯 모래는 자취를 감추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선탠으로 까맣게 몸을 태운 자갈만 엎디어 있다. 바다의 울타리처럼 둘러쳐진 바위들, 간간히 보이는 하얀 바다 수제비 -양식 표시 스티로폼이라 했다 -가 우리들 여행의 첫 허기를 매워 줬다.

동해안에는 갈비뼈처럼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관광지가 많았다. 통과의례처럼 성류굴, 오죽헌, 정동진, 낙산사에 들러 디지털기계 속에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을 박제하고 빠져 나왔다.

또 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먹거리다. 강원에 도착하니 온통 간판은 두부로 도배 되어 있었다. 어느 지역보다 콩 농사가 잘 되는 모양이다. 강원도에 도착하면 뭔가 특별난 음식이 우리를 기다릴 것만 같았는데, 사전지식 하나 없이 출발한 우리는 외국인처럼 매일 먹는 두부를 난생 처음 보는 음식처럼 먹어야했다. 순두부찌개는 곰탕처럼 뽀얀 국물로 나왔다. 고춧가루에 풍덩 빠진 두부만 먹다가 몽글몽글한 두부가 동동 뜬 찌개는 속이 편하고 맛이 담백했다. 아이들도 엄마가 끓여준 두부찌개보다 훨씬 맛있다니 벌써 강원도 여행은 팔십 점을 넘어섰다.

초행길이라 콘도를 찾아 가는데 꽤 어려움이 있었다. 머리를 삐죽 내민 높은 콘도는 연어 회 속에 돌돌 말린 야채처럼 산속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설악산으로 향했다. 흔들바위를 만나러 가는 나와 아이들은 흔들바위보다 더 흔들 촐싹거리며 산을 올랐다. 우리는 아이들처럼 흔들바위놀이를 하며 산을 올랐다. 우리는 흔들바위가, 주유소 앞에서 바람에 흔들거리는 풍선인형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위는 꿈쩍도 안 하고 같은 자리에서 평생을 따분히 보낸다는 생각을 깨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특별한 체험을 아이들에게 보여준다는 것이 마음을 더욱 흥분되게 했다. 어쩌면 흔들바위는 말을 할지도 모른다는 상상까지 들었다. 움직인다는 것은 감정에 반응한다는 뜻이고 그래서 느낌이 통하는 사람에게만 간단한 몇 마디의 말을 작게 속삭일지도 모를 일이다. 갑자기 아이 같은 동화가 머리의 이곳저곳을 자극했다.

내 유년에 우리 집 뒷산에는 정말 큰 바위가 있었다. 우리 집 안채 바로 뒤통수를 따라 올라가면 한 치 틀림없이 그 자리에 있다. 요즘처럼 컴퓨터가 없던 시절이라 주로 자연과 벗하며 놀았다. 바위는 내 유년의 무뚝뚝한 친구였다. 그렇게 덩치 큰 것이 어쩌다 엄마를 잃고 혼자 그곳에 우뚝 박혀 있는지 아무리 물어도 한마디도 해 주지 않던 내 친구였다. 대답 한번 안하는 그였지만 지금까지도 내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나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되었던 가장 좋은 친구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무척 외로울 때 어머니께 혼나고 쫓겨날 때도 나는 바위를 찾았다. 바위의 가슴부분에는 내가 들어가 앉기 좋을 만큼의 공간이 있었다. 나는 바위의 가슴에 안겨서 소꿉놀이도 하고 더운 여름엔 땀을 식히기도 했다. 정월 대보름엔 달이 뜨는 것을 빨리 보기 위해 바위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서기도 했다. 그때는 나뿐만 아니라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모여 바위와 동무가 된다. 그럴 때 바위는 싫은 내색 한번 없이 동네 아이들 모두를 어깨에 목말을 태워주고 우리들은 솟아오르는 달을 서로 먼저 보겠다고 난리다.

바위는 그렇게 내 유년을 함께 했고, 지금까지도 우리 집 뒤에 멀찍이 앉아서 나를 내려 보고 있다. 나는 화려한 문명에 젖어 바위를 늘 잊고 살았다. 가끔 친정엘 가도 바위를 생각한다거나 뒷산을 올려 보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어디에서건 바위를 보면 내 유년의 바위가 머릿속에 항상 첫 번째로 떠오르는 건 어떤 이유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산을 오르다보면 바위 앞에서 치성을 드리는 여인네들을 가끔 보게 된다. 그럴 때도 나는 내 바위가 나도 모르게 생각난다. 강원도라는 먼 여행지에서도 유년의 내 바위가 생각났다.

연예인들의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처럼 흔들바위가 가까웠음을 알리듯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우리도 흔들바위 앞으로 끼어들었다. 둥그렇게 커다란 바위 앞에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바위를 흔들어 보기도 했다. 나도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흔들어 보았다.

!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가 힘이 부족해 그런가 싶어 가족이 모두 밀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실망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한참을 흔들바위와 육박전을 치른 나는 바위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강원도에 여행에 처음인 남편 말을 전적으로 믿었던 내 불찰이 컸다. 남편은 흔들바위가 움직일 것이라는 혼자만의 즐거운 상상을 우리에게 심어줬던 것이다. 바위를 만나기 전에 행복했던 상상이 그리 나쁜 건 아니었지만 내심 무척 서운했다.

그늘에 앉아 한참 동안 바위를 뚫어지게 봤다. 둥글기만 할 뿐 여느 바위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데 사람들은 왜 흔들바위라 이름 짓고 그에 대한 대단한 환상을 가지고 꼭 흔들바위를 보기를 원하는 것일까. 전해 내려오는 얄팍한 전설 때문이라면 그건 어느 바위엔들 만들어 붙이면 되지 않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흔들바위와 아무런 의미 없는 인연으로 스쳤을까.

인연! 이 말을 내 뱉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남편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새파랗게 익지 않은 땡감일 때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내게 남편은 자상했다기보다 오히려 바위였다. 누구나 겪듯 시댁과의 문제에선 한마디 말이 없었다. 바위를 치면 오히려 내 손이 아팠다. 바가지를 긁고 나면 늘 내 속이 더 아팠다. 저기 바위처럼 남들에게는 인기가 항상 많고 자상했던 남편이었지만 내게는 늘 서운하고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남편은 변하지 않는 똑같은 색을 한다. 결코 치장이나 멋 내기를 하는 법도 없다. 어떤 일에든 결정한 일에는 한 번도 흔들리는 적 없이 우직하고 말이 없다. 튀어 나온 부분을 잘라 내거나 깎아 내는 법도 없이 그저 생긴 대로 두루뭉술하다. 이것도 허허 저것도 허허 그에게 있어 세상에 들어 주지 않는 이야기가 없고 나쁜 것이 없다. 그래서 남들에게는 다 좋은 동무이지만 내게 있어서는 꼼짝 않고 서있는 서운한 바위임에는 틀림없다.

바위를 잡고 서서 폼을 잡는 남편을 카메라에 담고 나니 수년전에 애절한 사연으로 헤어진 쌍둥이 형제를 만나 상봉하는 모습 같았다. 둥글둥글 생긴 모습이 닮았고, 찔러도 바늘 끝도 안 들어가는 탄탄한 성격이 똑 같고, 어떤 일에든 이렇다 저렇다 꼼짝 않는 묵묵부답의 심지가 형제임을 증명하듯 내 앞에서 둘이 손을 잡고 섰다. 그랬다. 남편은 나의 가장 가까운 흔들바위였다. 건드리면 흔들릴 것 같은 환상을 늘 심어주면서도 꿈쩍도 안하는 서운한 흔들바위였던 것이다.

바위보다도 더 바위 같은 남편 앞에서 나는 늘 구르는 자갈이 되어 살았다. 남편은 늘 같은 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힘이 되어 주어서, 힘들고 지칠 때 그늘도 되고 위안도 되었다. 그러나 바위에게 묻노니. 차르륵 차르륵 소리 내는 자갈이 없었다면 당신 삶이 얼마나 즐거웠을 것 같냐고? 동해바다의 큰 바위들 아래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자갈들이 노래를 하지 않더냐고?

흔들바위 앞에서 우리는 모두 구르는 자갈이다. 수많은 사람이 같은 느낌으로 다녀가지는 않았으리라. 겉으로 표현이 없는 바위와 얼마나 소담한 마음의 대화를 주고받느냐에 따라 또 하나의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이다. 성분이 같은 돌을 두고 하나는 바위라 이름 짓고 다른 것은 자갈이라 이름 짓는 이유가 꼭 덩치 때문만은 아니리라.

매사에 똑똑 소리가 나는 나보다는, 철저하거나 분명하지는 않아도 두루뭉술한 남편이 더 좋아 보일 때가 많다. 강원도에 어울리는 사람이 바로 남편이 아닌가 싶다. 옛날 태조 이성계가 정도전에게 팔도 사람의 성격을 말해 보라했을 때 강원도 사람들을 일러 암하노불(岩下老佛)이라 했다. 바위 밑에 있는 늙은 부처처럼 유순하다 했다. 사람이 유순해지려면 두루뭉술하여 이것저것 따지는 일이 적어야 하리라. 바위처럼.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또 하나의 마음의 고향- 뒷산의 바위-을 만들었고 나만의 또 다른 남정네를 만들고 말았다. 남편은 아마도 이런 내 마음을 전혀 모르는 듯하다. 나의 외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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