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서늘해 온다. 여름내 묵혔던 방충망을 뜯어내다가 기겁을 하고 말았다. 매미유충 한 마리가 탈피를 하다 자신의 갑옷에 끼인 채 활처럼 몸을 젖히고 바싹하게 말라 죽어 있다. 때론 목숨이 다한 것을 보는 것보다 오히려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 함께 있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
꼬리를 빼지 못한 매미유충의 마지막 두려움과 괴로움이 감지 못한 눈에 선명하다. 옥색 날개를 펴는 꿈을 꾸며 정신은 하나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을 것이다. 탈피를 간원한 휘어진 몸, 무엇이 끝까지 놓아주지 않았을까. 불완전한 삶을 완전하게 승화시키려했던 마지막 발버둥이 박제되어 있다.
문득 십년 전에 본 몸부림이 떠오르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생의 마지막을 보는 것은 엄숙하거나 아니면 괴롭다. 마무리가 잘 된 호상일 때가 그러하고 사연 많은 단명일 때가 그렇다.
형부는 사십대, 일의 자리 수 절반을 채우고는 매미유충 같은 삶을 마감했다. 표면상으로 언니보다 우리가 훨씬 애석하게 여겼던 죽음이었으니 당사자가 아니면 그 연유야 알뜰히 알 수가 없다. 내가 형부를 처음 만날 땐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하니 나에게 있어 형부는 숲 같은 아버지였다.
친정 장롱 안에는 아직도 형부 옷이 있다. 농사일을 거들어 줄 때 입던 아버지의 옷이다. 강산이 바뀐 지금도 그 옷에서 형부를 기억한다. 채 빠져 나가지 않은 형부 냄새와 그리움 때문에 눈보다 가슴이 먼저 소매를 적신다.
형부를 생각하면 매미같이 까만 눈이 떠오른다. 언니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미남이었던 형부는 머리도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형부는 결혼한 이듬해부터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언니 속을 무던히도 태웠다.
언니와 다르게 우리에겐 항상 인기가 좋은 형부였다.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 싹싹한 말솜씨와 통솔력으로 맏사위답게 일처리도 그만이었다. 그런 성격 때문에 무뚝뚝한 언니와는 충돌이 많았지만 밖에서는 늘 인기최고였다. 형부는 집보다는 밖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매미가 숲의 걸그림을 이탈하여 방충망에 앉아 있듯이.
수풀에 있어야 할 유충이 왜 아파트 베란다로 올라와 옷 벗기를 시도했을까. 유리에 붙은 스텐실 나비날개에 유혹을 당했나. 맴맴 잔소리 많은 집을 떠나 조용히 살고 싶었나. 현란한 환경에 사람이 흔들리듯 곤충도 사람 같은 구석이 있나보다.
불완전변태를 하는 매미는 유충 속에 날개가 있다. 그것은 우리 육안으로도 보인다. 그런 사실을 매미 자신은 모를 것이다. 나쁜 소문이 무성히 돌아도 몰랐던 형부처럼.
눈으로 보이는 것을 그것이라고 말하면 안 될 때가 있다. 유충 속에 날개로 보이는 것도 탈피가 되기 전까지는 날개라고 말할 수 없다. 가끔 주변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가운데 언니 마음에 더 불을 지르는 경우도 있었다. 형부도 모르는 일을 주변 사람들이 언니나 우리에게 왜곡된 해석으로 전해 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언니는 속상해 죽는다고 난리고 형부는 속 터져 죽겠다고 야단이다. 안 보이는 것이 원인이 되었는데 결과는 보이는 것이 되어 버렸다. 둘 다 죽는다고 할 때는 주변사람들이 오히려 원망스러웠다.
매미의 변태는 밤사이 몰래 이루어진다. 누가 보면 안 되는 사연이라도 있었을까.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속설의 말처럼 매미에게도 은밀한 장소와 여자의 등장이 필요했던 걸까. 완전변태를 하는 곤충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우화를 한다. 그것은 아마도 성숙된 번데기 과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동안 먹지도 않고 두문불출해야 하는 번데기 과정은 답답할 것이다. 그래서 매미는 꾸물거리더라도 움직이는 애벌레 과정을 더 오래 거쳐서 등을 가르는 비상을 선택했나 보다. 껍질이 찢기는 아픔을 감내하면서까지.
형부가 언니에게 용서 받지 못했던 것도 매미의 속성을 일부 닮았기 때문이다. 밤을 낮 삼아 활동했던 것, 집에 있기보다는 장거리 여행을 좋아했고 게다가 잔꾀까지 부렸으니 매미라 할 만하다. 싸움도 하니 늘고 잔머리도 쓸수록 단이 높아지더라는 말은 형부의 능청스런 성격을 대변한다.
매미유충은 긴 세월 동안 땅속에서 열 번이 넘는 허물벗기를 하고 땅 위에서 마지막 한 번의 우화로 매미가 되는 것이다. 등이 갈라지고 머리와 가슴이 나오는 그 순간은 참으로 경이롭다. 그러다 한참을 쉰 후 마지막 꼬리를 뺀다. 그동안 자신의 삶을 가렸던 껍질을 잡고 한참 동안 회상에 잠기다가 날개를 추스르고 깊은 밤 속으로 파르스름한 줄을 긋는다.
형부는 죽기 전까지 꽤 많은 허물벗기를 했다. 그것이 임기응변이고 구렁이 담 넘듯 하여 언니에게 더 많은 고통을 줬다할지라도 형부 나름대로 가정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불혹에 접어든 형부는 굼벵이 같은 생활에 손을 떼고 언니 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형부 몸은 이미 당뇨로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 언니에게 마지막으로 잘해 보겠다던 형부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마지막 우화를 눈앞에 두고 돌아가셨다. 우화에 성공한 매미가 까만 밤에 파란 포물선을 그리고 하늘로 날았다면 형부는 파란 바다에 하얀 파도를 잠깐 일으키다 끝내 수평선을 그리고 바다와 맞닿은 하늘로 스며들었다.
형부는 임종을 앞두고 출입문을 향해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을 향한 눈빛이 참으로 애절했다. 형부는 미안하다고 몇 번이고 말했지만 언니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것이 용서를 의미하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삶은 겪는 자의 몫이라는 말이 딱 맞는 모양이다.
흐르는 눈물이 연애라면 마른 눈물은 결혼인 모양이다. 언니는 눈물도 말라 있었다. 형부는 생의 부끄러운 옷을 벗고 가려고 안간힘을 쓰다 자신의 옷에 끼여 우화되지 못한 매미였는지 모른다.
통증 때문이었는지 형부 몸은 구부정하게 보였다. 멈춰버린 형부 가슴에 미색수의가 얹혀있다. 수의는 형부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언니 마음이었던 것이다. 환자복을 벗기자 바짝 마른 형부 몸이 보였다. 생의 옷을 벗고 뽀얀 날개를 단 형부는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보였다.
끼여서 바스라질 것 같은 매미를 빼내 나무 사이로 날려 보낸다. 그리고 방충망을 씻는다. 여름내 입었던 먼지 옷을 벗기자 건너편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들어와 안긴다. 옷은 잘 벗으면 이렇게 시원하고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