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담 주인석

대체의학

꿀밤나무 2012. 4. 24. 15:41

대체, 이게 무슨 해괴한 장면이란 말인가. 남자는 나의 배위에 엎어진 채로 꼼짝을 안한다. 그러더니 육십까지 세라고 한다. 치료과정 중에 일어난 일이라 심증은 얄궂다 싶지만 나는 내색 하지 않고 가만있다. 누가 봐도 야릇한 장면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몸이 자주 아프면 귀도 얇아지고 마음은 만물상이 되어 싸구려부터 비싼 것까지 듣고 보는 족족 들여오게 된다.

나는 평소 위장병이 좀 심각하다. 게다가 글 쓴답시고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경추디스크 시초라는 진단도 받았다. 이모저모 따져보면 내 몸이 거의 종합병원에 가까운 터에 절친한 친구가 현대의학으로도 잘 못 고치는 병을 대체의학이라는 것이 고친다는 정보를 줬다. 그런데 그 치료과정이 참 흥미롭다.

현대의학이 소극적이라면 대체의학은 적극적이라고 할까. 의학교육을 통한 지식도 아니고 병원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치료 방법으로 표준화된 것은 아니다. 즉 다양한 범위의 증상완화에서 예방 진단 치료까지 목표를 둔 것이 대체의학이다. 그러니 병이나 치료방법에 대해서 좀 더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생각으로 대하지 않으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

“누우시지요.”

나는 얇은 면옷을 입은 상태였다. 이것이 치료하기에 가장 좋다고 한다. 이미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환자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순순히 따랐다. 불편한 몸이 단번에 나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곧 벌어질 야릇한 동작도 괜찮다 위로하며 최대한 태연한 척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남자는 곧 덤빌 자세였다. 천장을 보고 누웠다가 시선을 어디 둬야 할 지 몰라 눈을 감았다. 그랬더니 남자는 내 양쪽 다리를 구부려 무릎을 가슴에 갖다 붙였다. 그러더니 양쪽 다리가 어긋났다고 한다. 어긋난 다리를 바로 맞추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다리를 비틀어 두들기고 밀어 넣었다. 마치 그의 손이 망치 같았고 내 다리는 이가 비틀어진 나무 같았다.

다리를 다 짜 맞춘 모양이다. 이번에는 엎드리라고 한다. 뒤통수에 눈이 없으니 남자의 자세를 관찰할 수가 없다. 그런데 남자가 내 다리를 접어 엉덩이에 갖다 붙이더니 골반과 사타구니가 비틀어졌다고 한다. 다시 두 다리를 4자 모양으로 만들고 밟고 두들겼다. 그러더니 양반다리로 앉으란다. 남자는 내 넓적다리 위에 올라서더니 질근질근 밟았다. 그런데 하나도 안 아프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골반이 다 교정된 모양이다. 이번에는 엎드리라고 한다. 남자는 내 등 위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았다. 남자는 소의 목에 걸린 굴레 자세를 하였다. 척추를 손으로 눌러 내려가는데 마치 장난감 조립해 나가듯 한다. 남자가 손에 힘을 주어 밀어 넣을 때마다 뼈는 우두둑 우두둑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그간 내 뼈가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져 있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했다. 눈을 감고 그 소리를 듣자니 대충 조립된 내 몸을 남자가 단단하게 짜 맞추는 같았다. 남자의 손은 익숙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다음에 남자는 내게 반듯하게 누우라고 한다. 이번에는 목이다. 내가 제일 약한 부분이다. 남자는 앉아서 공을 던지는 자세를 했다. 힘을 빼라고 하더니 내 목을 마치 공 굴리듯이 좌우로 흔들어댔다. 내 목이 아닌가싶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 순간 남자가 내 목을 사정없이 비틀었다. 옛날 오빠가 닭 잡을 때 목을 비틀던 그 생각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악 소리를 낼 틈도 없었는데 목이 대신 소리를 내 줬다. 꼬끼오가 아닌 우두두두둑. 심하게 튀어나와 있었던 경추가 감쪽같이 매끈해지고 부드러워졌다.

뼈를 전체적으로 다 끼워 맞춘 모양이다. 남자는 나를 다시 반듯하게 눕혔다. 남자의 시선이 부담스러우리만치 내 배 쪽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는 내 배에 손을 얹었다. 남자의 자세는 빨래하는 형세를 했다. 내가 비명 지를 틈도 없이 치료가 시작되었다. 비누칠도 안 된 배를 사정없이 움켜잡았다 놓았다 반복하면서 내장 속에 있는 잡것들의 숨통을 조르고 있었다. 손을 옮겨가면서 쥐어짜더니 위가 안 좋군, 장도 안 좋군, 신장은 더 안 좋군 한다. 남자가 손에 힘을 줄 때마다 내장을 훑어 내는 기분이었다. 시원하면서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남자에게 속까지 다 들키고 나니 힘이 쭉 빠졌다. 남자는 나보다 더 힘을 썼던 모양이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마무리라며 남자가 엎드리라고 한다. 엎드린 내 등 위에 남자가 올라탔다. 남자의 자세는 기마자세였다. 그러더니 남자의 엉덩이뼈로 내 척추를 하나씩 훑어 내려갔다. 다시 남자는 내 등과 그의 엉덩이를 밀착시켜 한참 오랫동안 문질러댔다. 시원하다고 하기에는 민망한 자세고 그만하라고 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 치료의 마지막 단계였다. 나는 모른 척 눈을 감고 있었다.

끝났는가 싶더니 다시 반듯하게 누우란다. 뒤쪽이 마무리 되었으니 앞쪽도 마무리를 해야 되나보다. 남자는 내 배위에 올라탔다. 남자의 몸짓은 노련하면서도 태연했다. 등짝이야 그래도 이해해 줄 만하지만 배 위에서 벌어질 일은 아무래도 민망하다.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배 위에서 흔들거렸다. 누가 멀리서 본다면 오해하기 좋을만한 자세다.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나 스스로 표정관리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나처럼 치료라고 꾹 참고 있었을 것이다. 환자의 반응이나 느낌에 따라 치료의 강도가 조금씩 달랐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치료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고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남자가 내려왔다. 몸이 홀가분하다. 최소한 좀 전에 뻐근했던 몸은 아니다. 완전히 이완된 느낌이다. 남녀의 기가 통했는지 그의 신통한 손이 치료를 했는지 모르지만 통증은 없어지고 시원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몇 가지 자세가 있다. 그것을 치료라고만 이해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고 이상하다고 하기에는 치료의 한 자세인 것을 어쩌겠나. 이런 것이 대체의학의 다채로움일지도 모른다.

내가 겪었던 병력만큼 내 치료력도 장황하다. 어릴 적부터 체험했던 이런 저런 잡다한 치료를 모두 기억해 내면 나도 어지간한 돌팔이 의사 흉내는 낼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모든 병은 무엇보다 환자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병을 다스리는 것이다.

대체의학을 받았던 그날은 참으로 시원하고 병이 사라진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난 지금은 내 마음의 만물상에 물건하나 들여 놓은 기분이다. 누군가 나와 같은 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면 한번쯤은 받아 볼 만하다고 권할 것 같다. 일시적인 진통제 역할은 충분이 되기에.(2009.05)

'수필 > 이담 주인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이브콘서트  (0) 2012.04.24
덧거리  (0) 2012.04.24
북 치고 장구 치고  (0) 2012.04.24
비빔밥  (0) 2012.04.24
  (0) 2012.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