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담 주인석

라이브콘서트

꿀밤나무 2012. 4. 24. 19:36

깊은 밤중에 물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뒤이어 여자 울음이 소리의 끝을 잡고 늘어진다. 한 시간 정도 난리를 치고 나면 쥐죽은 듯 조용해진다. 날마다 이 해괴한 소리를 들으며 나는 혹시 여자가 죽지나 않았을까하는 무서운 상상을 한다.

서양식의 구조를 따 왔다는 우리 집 거실은 기존 아파트와는 확연이 다르게 개방적이다. 더구나 생각만큼 방음 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다. 밤에는 어둠이 소리를 빨아 마셔버린 탓인지 이웃집의 소리가 잘 들린다.

늦은 밤에 작업을 하는 나는 소리에 특히 민감하다. 가끔은 어떤 소리에 이끌려 공부를 망칠 때도 있다. 남편은 대충 못들은 척 하란다. 그의 말처럼 세상의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면 피곤해지는 건 당연하겠지만, 소리를 묵살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여섯 달쯤 전부터 밤마다 여자의 울음소리와 살림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저러다 사람 잡겠다며 누군지 찾아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나와 남의 일에 관심 두지 말라는 남편과 밤마다 실랑이를 벌어졌다. 소리가 과격해 질수록 우리도 흥분 되었다.

현장에서 소리를 들었으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여야지 모른척한다는 것은 이웃으로서 예의가 아니라는 내 생각과 공동생활에서 남의 사생활에 간섭하는 것은 더 예의가 아니라는 팽팽한 의견이 맞섰다. 결국 촌에서 살다온 티 내지 말라는 남편의 마지막 충고에 지고 말았다.

하지만 남편이 출장을 떠나고 없는 날 밤, 나는 일을 내고 말았다. 걱정과 염려를 넘어서 도대체 어느 몰상식한 사람이 아내를 저토록 두들겨 팬단 말인가. 꼭 찾아내서 여성위원회에 고발하고 말리라는 생각을 했다. 매 맞는 여자를 상상하면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다.

여느 날과 비슷한 시각, 우당탕거리더니 여자의 비명소리가 났다. 같은 여자로서 분노가 치밀었다. 증거를 남기기 위해 카세트에 녹음 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우리 집을 둘러싼 넷 집중에 한 집일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먼저 아랫집일 가능성을 두고 방바닥에 귀를 붙였다. 승강기에서 가끔 만나는 아래층 여자는 늘 우울한 표정이었으므로 가능성이 컸다. 온 신경을 귀에 모으고 한참을 엎드려 있었지만 뽀시락 소리도 나지 않았다.

다시 오른쪽 벽에 귀를 붙인다. 별다른 기척이 없었다. 오른쪽 집은 통로가 달라 누가 살고 있는지 파악조차 어렵다. 왼쪽 집은 가끔 차를 한잔씩 나누는 사이라 훤히 알고 지내지만 부부사이는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니던가. 옆집과 가장 가까운 부엌 벽에 귀를 댔다. 옆집의 그녀는 늦은 밤 남편과 차를 나누었던 모양이다. 달그락 달그락 찻잔 씻는 소리 사이사이로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소리는 차츰 미궁으로 빠져 들었다. 마지막 윗집이 남았는데 확인하기가 가장 어렵다. 천장에 귀를 댄다는 것은 거의 묘기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층은 신혼부부라 한창 깨가 쏟아질 시기가 아닌가. 들으나마나 아니겠지만 그래도 포기 할 수 없었다.

침대 위에 의자를 놓고 섰다. 천장에 귀가 완전히 닿질 않아서 다시 베개를 의자 위에 얹고 올라섰다. 쿠션 좋은 침대가 의자의 다리를 자꾸 잡아당기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천장에 귀를 붙이는 순간,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리의 원천은 바로 위층이었다.

오동통하고 수더분하게 생긴 새댁과 농촌총각 같이 보이는 새신랑의 보금자리였다. 그런데 이 무슨 날벼락인가. 부부사이 일은 아무도 모른다더니 그 말이 딱 맞네, 딱 맞구나. 고운 새댁의 얼굴을 떠 올리며 참 안됐다는 생각을 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내 말을 믿으려하지 않고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난리였다. 사생활 침해로 고발당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는 둥 오히려 내게 협박이었다.

남편이 돌아왔다. 밤이 깊어가자 또 소리가 들려왔다. 어제와 똑같은 장치를 했다. 나는 혼자 잡은 범인을 보여주듯 흥분해 있었다. 천정에 귀를 대고 있는 남편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이제는 확실한 증거가 되었으니 딴 말 못하겠지. 그런데 남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는다. 남자들은 야성본능이 있다더니 때리는 남자를 상상하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 남편을 노려봤다.

“싸움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내일 아침에 한 번 가봐.”

남편이 출근하고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차 한 잔 하자는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새댁의 얼굴은 생기가 돌았다. 맞고 사는 여자들이 원래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한다더니 딱 그 짝인가 싶었다. 하는 수 없이 말을 꺼냈다.

“새댁, 언니 없어? 힘들면 도와줄게.” 도통 말을 못 알아듣는 새댁에게 맞고 사는 것 다 안다고 했더니 펄쩍 뛰었다. 밤마다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내게 그제야 새댁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 신혼시절이 떠올랐다. 남편에게 얼마나 많은 응석을 부렸던가.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종일 낮잠을 즐기고 퇴근시간에 맞추어 일어난다. 밤새 놀아달라고 조르는 내게 피곤에 지친 남편은 업어주기도 하고 이불로 미끄럼을 태워주기도 했다. 그 놀이가 시시해지면 고스톱치기를 했다. 이마 때리기 아니면 점당 십 원짜리를 했다. 금액이 백 원, 천원으로 올라가거나 이마에 혹이 나기 시작하면 비명소리에 울음보가 터졌다. 그쯤엔 주인집이고 뭐고 남의 눈은 없었다. 남편은 나를 달래느라 입을 틀어막고 끌어안아 눕히고 난리굿이었다.

새댁은 밤마다 미래의 아기가 탈 구루마를 미리 탄단다. 그게 시시해지면 고스톱도 치고 쌀밥 보리밥에 볼때기 따먹기 놀이도 한단다. 여섯 달 동안 예민한 내 귀를 자극했던 소리는 신혼부부 사랑의 해프닝이었다. 부부싸움으로 한 여자가 죽어가고 있다 상상했던 내 생각을 완전히 뒤엎었다. 남의 사생활에 간섭 하면 안 된다는 세상이지만 매일 매 맞는 여자를 방치 할 수 없다는 정의로운 내 신고 정신은 코미디처럼 끝나고 말았다.

부부싸움이 아니라 참으로 다행이었지만 날마다 들리는 소리는 사람의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소리는 괴롭든 즐겁든 듣는 사람의 몫이지 지르는 사람은 카타르시스에 빠져있을 뿐이다. 예민한 나와는 달리 남편은 천장을 향해 엄지손가락까지 치켜세운다. 그것이 생쇼가 될지라도 저렇게 즐겁게 살아야 한단다. 밤마다 구루마 행진곡과 음역을 넘나드는 새댁의 소프라노 콘서트가 잠잠해지고 나니 오히려 따분해지는 건 무슨 심산가.

사람 사는 집에는 웃음소리가 담을 넘어야 복이 대문으로 들어온다더니 위층 새댁이 그래서 복스럽게 생겼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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