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혹은 하루의 시작을 생각할 때 우리는‘해오름’을 떠올린다. 특히 해뜨기 전, 대기에 충만한 냉기와 어둠을 몰아내며 수평선에 등장하는 해오름의 장관은 태고 이래 모든 예술인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 수평선과 떠오르는 해가 만나 이루는 오메가 형상의 해오름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 찍을 수 있다고 해서 사진예술가들이 렌즈에 담고 싶은 가장 멋진 풍경이다. 그래서인지 전국적으로 유명한 해오름 장소는 떠오르는 붉은 해가 대지를 달구기 전에 먼저 사람들의 체온과 열정으로 이미 뜨겁게 달구어진다. 가까운 곳 울주군 서생면 진하리 진하해수욕장에 있는 명선도는 매년 1월에서 2월 중순까지‘해오름’을 찍기 위해 몰려드는 사진예술가들의 피사처로 전국적으로 이름난 곳이다.
1만 9백여㎡의 너비에 둘레가 500m인 무인도 명선도의 겨울 해오름은 일출각도가 자생하는 해송군락, 기암괴석과 잘 어울려 해송 뒤로 떠오르는 멋진 일출을 볼 수가 있다. 그래서인지 전국에서 모여든 사진사들이 장사진을 이루어 해수욕객이 떠난 빈 바다 모래밭을 다시 한 번 뜨겁게 달군다.
‘아무 것도 없는 섬’,‘우는 매미의 섬’(鳴蟬島) 혹은‘이름난 신선의 섬’(名仙島) 명선도는 그 이름만큼이나 신비한 무인도이다. 세속을 떠나 저 홀로 깨끗하다가 또 때로는 세속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 저 스스로 길을 내어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어주기 때문이다. 육지와 떨어져 있어 섬이라 불리지만 때로는 육지와 기막힌 해후로 섬이라고 부를 수가 없는 명선도의 변덕스러움은 진하항과 강양항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고 있는 주민들은 일상처럼 겪으면서 살아왔다.
“2004년 이후로 볼 수 없었던 명선도와 모래밭을 잇는 바닷길이 근 2년 동안 계속 열려요. 그것을 보려고 해마다 겨울이면 사람들이 무진장 찾아와요. 물때를 알아야하기도 하지만 물때를 안다고 해도 늘 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서 요즘은 우리도 그걸 잘 예측 못해요.”
동해 먼 바다로부터 밀려 들어온 해류가 명선도를 만나 갈라져 휘돌아 들어와 다시 만나는 곳에 모래언덕을 만들고 그것이 썰물 현상과 맞닿을 때 백사장에서 명선도까지 길이 100m 폭5m의 바닷길이 열린다. 특히 1월 중순부터 3월까지는 바람이 적어 해류가 만들어 놓은 모래 언덕을 파도가 쓸고 가지 않아서 그 현상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명선도가 만들어내는 ‘모세의 기적’은 아무 때나 볼 수 없기에 아무나 볼 수 없는 신비로운 현상임에 틀림이 없다.
회야댐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바다를 만나 비로소 자유로움을 얻는 곳. 진하항과 강양항의 어부들이 밤새 어장에 나가 거두어 올린 멸치를 싣고 새벽 여명을 몰고 들어올 즈음에 수평선 가득 부드러운 해무가 그들을 반겨 감싸 안는다. 바다의 걸인 갈매기 떼들이 밤새 조업에 지쳤을 어부들에게 약간의 선심을 바라는 염체 없는 몸짓마저도 진하의 아름다운 새벽 풍경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명선도의 솔숲과 떠오르는 해, 그리고 수평선 가득 피어오르는 해무와 휴식을 찾아 들어오는 고깃배를 따르는 갈매기 떼들이 이루어내는 풍경의 조화로움은 진하의 고단한 삶과 그 삶의 열정을 감싸 안아 위로해주는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풍경이다.
구름이 해를 가려 해오름의 장관을 잡지 못해 아쉬운 사진사들의 발길을 잡아 위로해주는 곳이 강양항과 진하항의 멸치 건조장이다. 밤새 어장에 나가 조업을 마치고 돌아온 멸치잡이 배들이 쏟아놓은 어항엔 은빛비늘을 퍼덕이는 멸치를 끓는 물에 데쳐 채반에 널어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새벽을 여는 부지런한 사람들의 몸놀림에서 삶의 진정성과 노동의 신성함을 또 한 번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때마다 잡히는 멸치의 크기에 따라 그 용도도 달라지며 특히 겨울에 나는 멸치는 서울 건어물상에서도 최고로 쳐준다고 한다.
붉게 떠오르는 해가 더 이상 사진사들의 눈에 담기엔 벅찬 시간이 되면 각지에서 모여든 사진동호회 회원들은 무리지어 싱싱한 횟감을 안주삼아 한 잔의 소주를 기울일 수 있는 것도 겨울바다 출사에서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낭만이다. 눈과 귀 그리고 입을 즐거움으로 가득 채웠다.